금융 당국, 1년 반 만에 긴급 구두 개입… 환율·증시 동반 충격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급격한 원화 약세 흐름에 제동을 걸기 위해 긴급하게 움직였다. 외환 당국은 이날 공동 명의로 출입기자단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환율 변동성을 깊은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구두 개입’은 시장에 쏠림 현상이 발생할 때 당국이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 환율 급등락을 진정시키는 조치다. 당국이 공동으로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은 중동 정세 불안으로 환율이 치솟았던 지난해 4월 이후 약 1년 반 만이다.

1430원 뚫린 환율, 당국 경고에 진정세

이날 서울 외환시장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원·달러 환율은 개장과 동시에 전 거래일 대비 9.0원 급등한 1430.0원에 출발하더니, 곧바로 1434.0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난 5월 2일 기록했던 1440.0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파른 상승세에 시장의 공포감이 확산되자 당국이 구두 개입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당국의 메시지가 전해진 직후 환율은 상승폭을 일부 반납하며 1427~1428원 선으로 내려와 거래를 이어갔다.

코스피 4100선 붕괴, 반도체 ‘투톱’ 직격탄

환율 불안은 국내 증시 투자 심리를 급격히 냉각시켰다. 코스피 지수는 전일 대비 1.84% 하락한 4090.59에 장을 마감하며 4100선이 무너졌다. 아시아 주요 증시 중에서도 한국 증시의 낙폭이 유독 두드러졌다. 특히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삼성전자(-3.76%)와 SK하이닉스(-2.98%)가 큰 폭으로 미끄러지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닥 역시 강보합세로 938.83을 기록하며 간신히 버텼지만 시장 전반의 활력은 떨어진 모습이다.

G2 리스크의 귀환: 트럼프 관세 위협과 중국의 경기 부진

이날 금융시장을 덮친 공포는 대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에 대한 보복 조치로 내달 1일부터 중국산 수입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미중 무역 갈등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중국의 경제 지표 부진이 찬물을 끼얹었다. 중국의 11월 소매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에 그쳐 시장 예상치(2.8%)를 크게 밑돌았고, 산업생산 역시 4.8% 증가로 기대치(5%)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세계의 공장이자 거대 소비 시장인 중국 경제의 회복 탄력성이 예상보다 약하다는 신호로 해석되어 아시아 증시 전반을 짓눌렀다. 홍콩 항셍지수는 1.34%,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0.55% 각각 하락했다.

미국 발 ‘AI 피로감’과 아시아 증시 동반 약세

미국 월가에서 불어온 ‘AI(인공지능) 숨 고르기’ 바람도 악재였다. 앞서 미국 증시에서는 브로드컴이 11% 넘게 폭락하고 AMD, 팔란티어, 마이크론 등 주요 기술주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아전트 캐피털의 제드 엘러브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를 두고 “투자자들이 AI에 대해 전면적인 비관론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겁을 먹고 신중해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 여파로 일본 닛케이 225 지수는 대형 제조업 업황 판단 지수(단칸)가 4년 만에 최고치(+15)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1.31% 하락한 50,168.11로 장을 마쳤다. 호주 S&P/ASX 200 지수 또한 0.72% 하락 마감했는데, 여기에는 전날 발생한 30년 만의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충격도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당분간 환율 변동성과 미중 갈등의 추이를 숨죽여 지켜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