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패의 제왕을 무너뜨린 짜릿한 역전승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마침내 테니스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했다. 지난 1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은 그야말로 신구 황제의 치열한 격전지였다. 알카라스는 3시간 2분에 걸친 혈투 끝에 38세의 ‘리빙 레전드’ 노바크 조코비치를 세트 스코어 3-1(2-6, 6-2, 6-3, 7-5)로 꺾었다. 이전까지 호주오픈 결승 무대에서 10전 전승이라는 경이로운 100%의 승률을 자랑하던 조코비치의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알카라스는 생애 첫 호주오픈 우승 트로피와 함께 415만 호주달러(약 40억 5000만 원)의 막대한 상금을 거머쥐었다.
역대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이번 우승은 단순한 메이저 대회 7번째 타이틀 이상의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이미 US오픈(2022년, 2025년), 윔블던(2023년, 2024년), 프랑스오픈(2024년, 2025년) 정상을 밟았던 그는 마지막 퍼즐인 호주오픈까지 제패하며 22세 8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이는 1938년 돈 버지가 23세 생일을 앞두고 세웠던 종전 기록을 가뿐히 넘어선 수치다. 프로 선수의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오픈 시대 이후로 기준을 좁혀봐도, 그의 우상인 라파엘 나달이 보유하고 있던 최연소 기록(24세 3개월)을 크게 앞당긴 대기록이다. 참고로 오픈 시대 이후 알카라스에 앞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남자 단식 선수는 로드 레이버, 안드레 애거시, 로저 페더러, 나달, 그리고 조코비치 단 5명에 불과했다.
완벽했던 경기 운영과 세대교체의 신호탄 경기 초반 흐름은 녹록지 않았다. 알카라스는 1세트 내내 조코비치의 완벽한 포핸드 스트로크에 밀리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세트부터 특유의 날렵한 발놀림이 살아나면서 서서히 코트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강약 조절을 동반한 침착한 스트로크가 빛을 발했다. 서브의 위력도 압도적이었다. 최고 시속 207km에 달하는 강서브를 꽂아 넣으며 201km에 그친 조코비치를 압박했고, 첫 서브 득점 확률 역시 77%를 기록해 66%의 조코비치보다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반면 4강에서 세계 2위 얀니크 신네르를 꺾고 올라온 조코비치는 결승전에서 뚜렷한 체력적 한계를 노출했다. 남녀 단식 통틀어 메이저 대회 최다승인 25승을 노렸으나, 16살이나 어린 젊은 피의 강력함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생애 첫 호주오픈 결승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든 승부가 끝난 뒤 조코비치는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챔피언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코트 위 인터뷰에서는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나달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으며 스포츠맨십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여자 단식 리바키나의 통산 두 번째 메이저 제패 남자 단식 결승에 하루 앞서 1월 31일에 치러진 여자 단식 결승의 열기 역시 매우 뜨거웠다. 세계 랭킹 5위 엘레나 리바키나가 랭킹 1위 아리나 사발렌카를 세트 스코어 2-1(6-4, 4-6, 6-4)로 물리치고 호주오픈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2022년 윔블던에서 카자흐스탄 국적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정상에 섰던 그녀는, 이로써 약 4년 만에 개인 통산 두 번째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품에 안게 되었다.
쉬지 않는 발걸음, 몬테카를로 방어전을 위한 담금질 호주오픈에서 세계 테니스계의 정점에 우뚝 섰지만, 알카라스의 여정은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최근 출전한 마이애미 오픈에서 세바스찬 코르다에게 패배해 다소 일찍 짐을 싸야 했던 그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곧바로 붉은 흙먼지가 날리는 클레이 코트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그는 고향인 스페인의 레알 무르시아 테니스 클럽 1919에서 다가오는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타이틀 방어를 위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의 훈련 파트너는 20세의 스페인 테니스 신성 마르틴 란달루세다. 란달루세는 바로 그 마이애미 오픈에서 알카라스를 꺾었던 코르다를 제압하고 8강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스페인 테니스의 현재이자 메이저 대회의 지배자인 알카라스, 그리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무서운 신예 란달루세가 붉은 코트 위에서 함께 라켓을 맞대는 모습은 곧 본격적으로 막을 올릴 클레이 시즌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