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첫째 주말 극장가는 그야말로 외화와 한국 영화의 치열한 각축전이었다. 4월 3일부터 5일까지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KOBIS) 집계에 따르면, 라이언 고슬링 주연의 ‘프로젝트 헤일메리(Project Hail Mary)’가 32만 8,75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이 기간 24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이 영화는 전체 매출액의 39.56%를 점유했으며, 지난 3월 18일 개봉 이후 현재까지 누적 수익 1,220만 달러를 기록 중이다.
정상 자리는 내주었지만 ‘왕의 수호자(The King’s Warden)’의 역사적인 흥행 돌풍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주말 동안 170만 달러를 추가한 이 묵직한 사극은 누적 수익 1억 310만 달러라는 전례 없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사흘간 27만 272명의 관객이 다녀가며 총누적 관객 수는 1,609만 1,712명에 도달했다. 이는 역대 한국 영화 흥행 2위인 2019년 작 코미디 ‘극한직업'(1,626만 명)의 대기록 경신까지 불과 17만 명도 채 남지 않은 수치다.
이 외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포진했다. 박철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성우와 정가람이 호흡을 맞춘 범죄 액션 코미디 ‘디 얼티밋 듀오(The Ultimate Duo)’는 26만 3,270달러의 수익으로 3위에 안착했다. 한직으로 밀려난 베테랑 형사와 인플루언서 출신 신참의 강남 살인사건 공조 수사를 그린 이 영화는 4월 2일 개봉 이래 총 34만 9,149달러를 벌어들였다. 4위는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일본 로맨스 ‘네가 남긴 마지막 노래(The Last Song You Left Behind)’가 차지했으며, 제한된 상영관 수에도 불구하고 주말 수익 29만 3,306달러(누적 4,140만 달러)를 기록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 편’이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그 뒤를 이어 픽사의 ‘호퍼스(Hoppers)’, 8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사전 상영만으로 12만 6,297달러를 모은 김혜윤, 이종원 주연의 공포 스릴러 ‘살목지’,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세기말의 마술사’,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더 홀 블러디 어페어’, 그리고 프랑스 애니메이션 ‘기차 탄 반려동물들(Pets on a Train)’이 차례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주말 전체 극장가 매출은 전주(790만 달러) 대비 다소 감소한 580만 달러로 집계됐다.
‘극한직업’의 1600만 신화, 그 중심에 섰던 이동휘의 연기 변신
‘왕의 수호자’가 맹추격하고 있는 ‘극한직업’의 1,600만 흥행 신화. 그 중심에는 특유의 유쾌한 호흡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배우 이동휘가 서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감초 구실을 톡톡히 해낸 까불이 동룡 역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그는, ‘부라더’와 ‘극한직업’ 등 주로 코미디 장르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었다.
‘극한직업’ 개봉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같은 코미디 장르여도 이전과는 다른 결의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과거에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액션’을 취하는 쪽이었다면, ‘극한직업’에서는 동료 배우들의 엉뚱한 행동에 황당해하며 ‘리액션’을 받아주는 역할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치열하게 연기했지만, 그 작품이 무려 1,600만 관객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기록할 줄은 그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코믹함을 지우고 진정성을 입다: ‘어린 의뢰인’이 남긴 것
하지만 배우 이동휘를 단순히 코믹한 캐릭터로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영화 ‘공조’나 ‘재심’에서 웃음기를 싹 거둔 냉철한 얼굴을 보여주기도 했던 그는, 장규성 감독의 2019년 작 ‘어린 의뢰인’을 통해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진중한 면모를 스크린에 새겨 넣었다.
2013년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던 ‘칠곡 아동학대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서, 그는 7살 동생 민준(이주원 분)을 죽였다고 자백한 10살 소녀 다빈(최명빈 분)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변호사 정엽 역을 맡았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동휘는 단호한 목소리로 작품에 합류한 이유를 밝혔다. 시나리오를 읽고 가슴이 너무 아팠으며, 현실에는 영화보다 더 잔혹한 아동학대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기에 이런 이야기는 무조건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첫 단독 주연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광을 아역 배우들에게 돌리며 손사래를 쳤다. “단독 주연이라고 부르기도 쑥스러울 만큼 아이들의 연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 아이들에게 잘 얹혀갔다고 해야 맞을 거예요.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을 찍다가도 카메라가 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진난만하게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며, 제가 어느새 잊고 지냈던 연기에 대한 순수한 초심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깊은 우물을 파는 배우, 크리스천 베일을 꿈꾸며
2013년 영화 ‘남쪽으로 튀어’의 단역으로 데뷔장을 치른 이후, 이동휘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배역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달려왔다. 그러던 그에게도 뜻하지 않은 공백기가 찾아왔다. ‘부라더’ 이후 약 1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쉬며 그는 배우로서 나아갈 방향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를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고민의 흔적은 복귀 이후의 행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묵직한 메시지의 ‘어린 의뢰인’은 물론,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독립영화 ‘국도극장’에서는 소소하고 담백한 일상 연기를 선보였다. 이충현 감독의 전작 단편 ‘몸값’을 인상 깊게 본 인연으로 스릴러 영화 ‘콜’에 기꺼이 합류하는가 하면, 오랜 친구인 배우 이기혁의 단편영화 연출 데뷔작에도 흔쾌히 힘을 보탰다. 작품의 예산이나 본인 배역의 비중은 그가 연기를 선택하는 데 있어 더 이상 중요한 잣대가 아니었다.
“우물을 깊게 팔수록 맑은 물이 솟아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분명 더 높은 차원의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완벽하게 해내려다 보면 당연히 스트레스도 뒤따르겠지만, 그런 치열한 고민의 시간들을 놓치지 않아야 비로소 더 좋은 연기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할리우드 명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영화 ‘바이스’에서 딕 체니 전 부통령으로 완벽하게 빙의한 그의 연기를 보며 대체 어떻게 저런 표현이 가능한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늘 신선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동휘. 조곤조곤 자신의 굳은 연기 철학을 털어놓는 그의 단단한 얼굴에서, 과거 대중을 웃음 짓게 하던 까불이 ‘동룡이’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