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력 강화와 미래 기술 리더십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섰다. 2나노 공정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해 TSMC와의 격차를 좁히는 한편, 인공지능(AI)과 로봇 등 차세대 기술 분야의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하는 과감한 인사를 단행하며 위기 돌파를 위한 전열을 재정비했다.
2나노 생산 능력 확대와 수율 안정화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나노 웨이퍼 생산량은 올해 월 8,000장 수준에서 내년 말 월 2만 1,000장으로 약 163%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3나노 도입 초기 겪었던 수율 난조를 극복하고, 2나노 공정이 본궤도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현재 2나노 공정 수율은 55~60% 선까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생산 안정화는 대형 수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테슬라와 165억 달러 규모의 차세대 AI6 칩 생산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시스템LSI 사업부의 엑시노스 2600, 일본 프리퍼드 네트웍스(PFN) 등 굵직한 고객사를 확보했다. 퀄컴의 차세대 AP 수주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파운드리 사업의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GAA 기술력과 유연한 가격 정책으로 틈새 공략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독주는 여전하다. 2분기 기준 TSMC의 점유율은 70.2%에 달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7.3%에 머물렀다. 하지만 기술적 측면에서는 삼성전자가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은 3나노부터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를 선제적으로 도입해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반면 2나노부터 GAA를 처음 적용하는 TSMC에 비해 공정 최적화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가격 경쟁력 또한 삼성의 무기다. 엔비디아와 애플 등 빅테크 주문이 폭주하며 TSMC가 2나노 웨이퍼 가격을 인상하자, 삼성전자는 유연한 가격 정책을 앞세워 고객사들을 유인하고 있다. 최근 AI 반도체 스타트업인 차보라이트, 아나플래시, 딥엑스 등과 잇따라 계약을 맺은 것은 틈새시장을 공략한 성과로 풀이된다.
미래 준비를 위한 과감한 인적 쇄신
하드웨어 혁신을 뒷받침할 인재 전략 또한 구체화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25일 단행한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총 161명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이는 전년 대비 17.5% 늘어난 규모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번 인사의 핵심은 ‘성과주의’와 ‘세대교체’다. 승진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47.7세로, AI·로봇·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유망 분야에서 성과를 낸 젊은 리더들이 대거 발탁됐다. 특히 1986년생 부사장 2명이 탄생하는 등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능력 위주의 인사가 이루어졌다.
AI·로봇 분야 차세대 주역 부상
주요 승진자 면면을 살펴보면 미래 기술 확보에 대한 삼성의 의지가 뚜렷하다. 삼성리서치 로봇인텔리전스팀장 권정현 부사장은 로봇 AI 기반 인지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공로를, MX사업부 언어AI코어기술개발그룹장 이성진 부사장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대화형 플랫폼 개발을 주도한 점을 인정받았다.
파운드리 사업부에서도 PA3팀장 이강호 부사장 등이 승진하며 공정 기술 강화에 힘을 실었다. 또한 HBM4 개발을 통해 D램 제품 완성도를 높인 유호인 부사장 등 메모리 분야의 핵심 인재들도 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39세의 나이로 상무에 오른 김철민, 이강욱 등 ‘젊은 피’의 약진도 눈에 띈다. 계열사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최연소 여성 임원을 배출하고, 삼성전기와 삼성SDS가 기술 인재를 전진 배치하는 등 그룹 전반에 혁신 기류가 흐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텍사스 테일러 팹의 가동률이 본격적으로 올라가는 2027년을 기점으로 삼성 파운드리가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구축한 2나노 양산 체제와 젊은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TSMC와의 경쟁 구도를 재편하고 미래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