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완전히 달라졌다. 감독 한 명이 바뀌었을 뿐인데, 마치 무거운 템포의 수비 농구에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런앤건(Run-and-gun) 농구로 팀의 체질을 통째로 바꾼 듯한 폭발력을 뿜어내고 있다. 이전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마이클 캐릭은 부임하자마자 리그 선두권 팀들을 연달아 코트 바닥에 눕혀버렸다. 리그 2위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무실점 승리를 거두더니, 그 기세를 몰아 선두 아스널마저 원정에서 3-2로 꺾어버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 짜릿한 연승은 단순히 승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과거 에버턴이 최상위 두 팀을 연달아 잡아냈던 아주 오래전의 기억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처음 등장한 진풍경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아스널 원정 승리를 챙긴 맨유는 경쟁팀 첼시를 끌어내리고 자력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가능한 4위 고지에 안착했다. 반면 덜미를 단단히 잡힌 아스널은 거센 추격을 받으며 쫓기는 처지로 전락했다.
백포 전환과 브루노의 전진 배치라는 완벽한 변주곡 캐릭 체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결과 못지않게 매끄러운 경기 내용이다. 캐릭은 이전 감독이 고집하던 스리백을 과감히 버리고 백포 전술을 꺼내 들었다. 여기에 주로 3선에 머물던 브루노 페르난데스를 2선 중앙으로 끌어올려 공격의 핵심으로 삼았다. 코트 전체를 읽는 시야가 넓은 특급 포인트 가드를 하프코트 위로 바짝 전진시켜 공격 템포를 직접 지휘하게 만든 셈이다. 이 전술적 변주는 완벽하게 적중했다. 아스널전에서 맨유는 44%의 점유율과 79%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며 수치상으로는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줬지만, 대신 날카로운 트랜지션을 택했다. 수비수 리산드로 마르티네스의 뼈아픈 자책골로 리드를 뺏긴 것도 잠시, 브라이언 음뵈모가 상대 수비진의 치명적인 턴오버를 놓치지 않고 동점골을 터뜨렸다. 후반전은 더욱 다이내믹한 득점 공방전이었다. 패트릭 도르구가 중앙에서 묵직한 중거리 슛으로 역전을 만들자, 다급해진 아스널은 교체 카드를 대거 쏟아부어 미켈 메리노의 득점으로 응수했다. 하지만 불과 몇 분 뒤, 마테우스 쿠냐가 헐거워진 상대 중원의 틈을 타 환상적인 감아차기로 결승골의 림을 가르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공수 전환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농구 경기의 클러치 타임을 연상케 하는 눈부신 승부였다.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옛 전설의 은퇴 선언 올드 트래퍼드에 이렇듯 새롭고 경쾌한 템포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동안, 한때 맨유의 측면을 온전히 책임졌던 베테랑은 조용히 코트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폭발적인 윙어에서 헌신적인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환하며 긴 세월 그라운드를 누볐던 애슐리 영이 이번 시즌을 끝으로 40세의 나이에 프로 생활을 마감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 입스위치 타운에 몸담고 있는 그는 퀸스 파크 레인저스와의 챔피언십 최종전이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것이라 전했다. 입스위치가 플레이오프라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피하고 프리미어리그 자동 승격을 확정 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피날레가 될 것이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프로 선수로서 살아온 긴 시간 동안 자신이 이룬 모든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며 덤덤한 소회를 밝혔다.
멈추지 않았던 23년의 풋워크와 765번의 출장 유스 팀에서 시작해 1군 무대를 밟은 이후, 그의 커리어는 그야말로 쉼 없이 코트 양 끝을 오가는 박스 투 박스 플레이어의 치열한 삶과 같았다. 23년이라는 방대한 시간 동안 그는 무려 765경기에 출전해 88골을 기록하는 묵직한 족적을 남겼다. 데뷔 초 왓퍼드의 승격을 돕고 애스턴 빌라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영플레이어상까지 거머쥐었던 그는, 이후 맨유로 이적해 오랜 기간 헌신하며 프리미어리그, FA컵,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례로 품에 안았다.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서른아홉 번의 A매치를 소화하며 월드컵 4강이라는 큰 무대를 밟기도 했다. 커리어 후반부에는 이탈리아 무대로 건너가 인터 밀란 소속으로 세리에 A 우승의 쾌거를 이뤘고,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 애스턴 빌라와 에버턴을 거쳐 지금의 팀에 안착했다. 비록 고관절 부상으로 한동안 스쿼드에서 이탈해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소속팀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이라는 마지막 림을 향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화려했던 옛 세대의 아쉬운 퇴장과 런앤건 리듬으로 새롭게 무장한 현재의 맨유. 잉글랜드 축구계는 지금 과거의 유산과 미래의 비전이 교차하는 아주 흥미로운 트랜지션 구간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