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물난리, 보이지 않는 독점의 늪: 한국 사회의 전방위적 ‘기반’ 수리

전북 군산시가 단단히 벼르고 나섰다. 해마다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면 어김없이 물난리를 겪어야 했던 시민들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올해 ‘침수 예방’과 ‘하수도 정비’라는 도시 기초 체력 키우기에 예산을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당장 중앙배수분구를 비롯해 대야 지역의 배수망과 하수관로, 회현 하수관로 정비는 물론 대야공공하수처리장의 덩치를 키우는 등 5개 굵직한 신규 사업이 첫 삽을 뜬다. 2029년까지 무려 976억 원이 투입되는 거대 프로젝트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암동이나 구암·조촌동 같은 도심 한복판에서는 빗물과 오수를 분리하는 작업이 한창이고, 성산면이나 옥구읍 등 외곽 농어촌 지역도 마을 단위 처리시설을 세우며 제 속도를 내고 있다.

이승재 하수과장의 말마따나 이런 기반 시설 정비는 끝없는 투자가 필요한 지난한 과정이다. 하지만 이 지난한 공사가 완료되기만 하면 악취는 줄고 수질은 맑아지며, 무엇보다 저지대 주민들이 비가 오는 밤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지 않아도 된다. 말 그대로 시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물리적 배수관’을 고치는 생존의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 지자체가 물리적인 하수도망을 뚫어 빗물의 범람을 막고 있다면, 중앙 규제 당국은 거대 플랫폼의 횡포로 시장의 혈관이 막히는 것을 뚫기 위해 칼을 빼 들었다.

바로 2026년 6월 1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 배달 앱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배달의민족(배민)과 쿠팡이츠의 동의의결(자진 시정안) 신청을 단칼에 거절한 사건이다. 적당한 타협안을 던지며 조용히 사건을 무마하려던 두 거대 플랫폼의 시도에 제동을 건 것인데, 법학 학위가 없더라도 이 결정이 뜻하는 바는 꽤나 명확하다. 공정위가 이들의 행위를 ‘돈으로 대충 덮고 넘어갈 수 없는 중대한 시장 교란’으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이제 사건은 정식 심의로 넘어가며, 베를린과 서울의 회의실 공기부터 완전히 달라지게 생겼다. 당장 배민의 모기업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는 2,390억 원에서 최대 5,100억 원(약 3억 7,500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쿠팡이츠 역시 최대 420억 원의 벌금 청구서를 받아 들 가능성이 열렸다. 이건 장부 구석에 적어둘 단순한 규제 준수 비용이 아니다. 인수자나 채권자,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 평가 모델에 곧장 반영해야만 하는 뼈아픈 타격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최혜대우 요구(MFN)’다. 공정위는 두 배달 앱이 식당 사장님들의 목을 비틀어, 경쟁 앱에서 더 싼 가격이나 낮은 최소 주문 금액 등의 좋은 조건을 내걸지 못하게 통제했다고 보고 있다. 말을 듣지 않으면 프리미엄 멤버십인 ‘배민클럽’이나 ‘쿠팡와우’에서 가차 없이 쫓아냈다. 심지어 배민은 자사 배달(배민배달)이 식당 자체 배달보다 더 빠른 것처럼 예상 소요 시간을 교묘하게 조작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경쟁 앱이 수수료를 깎아주며 치고 들어오려 해도, 식당이 그 혜택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다면 소비자는 굳이 새로운 앱을 쓸 이유가 없다. 1위 플랫폼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경쟁의 규칙 자체를 얼려버린 것이다.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단순히 한국만의 유난이 아니다. 이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17년 아마존의 전자책 계약 불공정 조항에 철퇴를 내렸고, 그 이전엔 애플이 같은 이유로 조사를 받았다. 독일 연방카르텔청 역시 체크24(Check24)를 비롯한 디지털 비교 플랫폼들의 동등 대우 의무 부과 행위를 엄격하게 제재해 왔다. 나아가 현재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은 거대 플랫폼이 입점 업체들을 가두리 양식장처럼 통제하는 행위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가장 속이 타들어 가는 건 단연 딜리버리히어로다. 안 그래도 61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부채에 짓눌려 자금 마련이 시급한 그들은 한국의 알짜배기 자회사인 배민을 팔아 숨통을 틔우려던 참이었다. JP모건을 낀 채 메이투안, 그랩, 우버, 네이버 등 잠재적 매수자들의 눈치를 보며 몸값을 49억에서 56억 달러 선으로 부르려던 찰나였다.

하지만 그 막대한 수익 모델의 밑바탕에 ‘불법적인 플랫폼 갑질’이 깔려있었다는 꼬리표가 붙어버렸다. 최대 5,100억 원의 과징금 자체가 당장 회사를 무너뜨리진 않더라도, 인수합병(M&A) 테이블에서 매수자들에게 가격을 후려칠 완벽한 명분을 쥐여준 셈이다. 이보다 타이밍이 나쁠 수는 없다.

규모의 경제와 촘촘한 물류망을 무기로 내세우던 쿠팡 역시 껄끄럽기는 매한가지다. 가뜩이나 지난 3년간 국내 대기업 중 공정위 과징금 누적 랭킹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마당에, 배달 사업에서마저 또다시 규제 당국의 매를 맞는다면 ‘시장 독점적 포식자’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란 더욱 요원해진다.

물론 으레 그렇듯 정식 심의 과정에서 최종 과징금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깎일 여지는 분명 남아있다. 그러나 명확해진 사실이 하나 있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쥔 플랫폼이 동네 식당의 숨통을 조이고 골목상권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해, 한국 규제 당국이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다. 폭우의 범람을 막기 위해 낡은 하수관을 뜯어고치는 군산시처럼, 보이지 않는 시장 권력의 폭주를 막아내기 위한 ‘디지털 방파제’가 지금 한국 경제의 밑바닥부터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